1. 玄雨님의 글을 읽고 문득 아파트 정문에 있는 빨간 우체통이 생각났다. 그 우체통은 공중전화 박스와 택시 정류장이 되어버린 카풀 정류장, 사람들 틈바구니에 가려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지만 그래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곳에 편지를 넣어본지 이제 한 손으로는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2. 물론 대학교 학관 앞에도 우체통은 있었다. 무엇인가를 부친다는 용도로 이용하지 않았을 뿐. 아마 우체통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친구도 많았을거다. 그보단 학생처 안에 있는 무인우편기기가 더 많이 쓰였다. 편지보단 택배를 많이 보내는 시대니까.

3. 내가 타인에게 받아본 손으로 쓴 편지들 중 하나는 유치원 선생님께서 방학때 보내신 엽서였다. 내 기억으로는 그것이 최초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받아봤을지도 모를 노릇. 버리지는 않아서 어딘가 서랍을 뒤져봤을 때 나오곤 하는데,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4.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그 이전에 만났던 선생님들과는 좀 다른 분이셨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전교조라는 티가 확 나는데 그때는 알 리가 없었지. 한 학기 밖에 같이 지내지 못했지만, 남달랐던 교육관이 인상적이었다. 방학때는 아이들에게 손으로 편지를 일일이 쓰셔서 보내주셨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길었던 편지였다. 그 해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보여주셨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5. 실제로 만나서 웃고 떠드는 친구들보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게 만드는 친구는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이곤 하였다. 인터넷이 상용화되지 않았던 PC통신 시절 동호회를 통해 만났던 친구들이 곱게 써서 보내줬던 편지. 그 중 한명과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오히려 실제로 만나보니 별로 친해지지 않더라는? 이상한 관계.

6. 손글씨를 보면 성격이 보인다. 글씨를 만들어가는 손놀림도 사람마다 다르다.

7. 한 친구의 손글씨는 내 동경의 대상. 그냥 슥슥 쓰는 글씨도 그 친구의 손을 거치면 참 예쁜 무엇인가가 되곤 하기 때문에. 편지도 어찌나 정성들여 쓰는지. 그치만, 역시 매일 얼굴보는 친구에게 손편지를 받을 기회는 별로 없어서 내가 받아본거라곤 크리스마스 카드 정도라는.

8. 손편지라는게, 받으면 기분좋긴 하지만 쓰는 당사자에게는 참 고역이다. 편지지 한 장을 가득 메우고 나면 손은 욱신욱신. 그래서 항상 크리스마스 카드는 받기만 하고 제대로 전해준 적이 없는 듯도 하다. 이참을 빌어 친구들에게 심심한 사죄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 PREV | 1 |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44 | NEXT ▶

BLOG main image
살아가는 이야기 by Ciel 

공지사항


카테고리

Flight of Fancy (44)
日常茶飯事 (8)
雜談 (9)
旅行記 (17)
關心事 (0)
鑑賞 (10)

글 보관함

달력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 35,366
Today : 2 Yesterday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