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2008/09/02 20:46

가면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실체가 그러한 것처럼 가면은 자신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 데 있다. 무도회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한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신분을 떠나 꿈처럼 살기를 원했던 '이상'에 걸맞는 문화 코드였던 것이다. 상점에 내걸린 가면이 수면에 비친 모습에서 인간이 하찮은 감정들로부터 무관심해져 있는 순간을, 인간 영혼이 물 위를 떠가는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그렇게 가면을 쓴 채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삶에 얹혀진 짐들을 벗어놓는 순간이며, 꿈이 현실에 대답을 하는 순간이다.

- 이병률 「끌림」

비단 얼굴에 쓰고 있는 실체가 있는 그 무엇만을 가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가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비단 과거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도 때로는―또는 항상을― 꿈처럼 살기 원하니까. 오늘 하루를 지내는 이 순간에도 어쩌면 나는 가면을 뒤집어 쓰고 있지 않을까. 아니 꼭 꿈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 가면을 써야만 하는 순간도 충분히 많다.

그러나 이러한 가면들을 모두 내다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가면들 속에 때로 숨겨진 진정성 때문이다. 차마 맨 낯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해 주는 가면은 때로는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주는 자유로움과 희열을 차마 놓아버릴 수 없다. 가면을 쓰면 자신의 얼굴은 가릴 수 있을지언정 자신이 품고 있는 내부의 무엇인가는 가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가면의 매력은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더 확실하게 부각시켜주는 효과도 가지게 된다.

다만 되돌아봐야 할 것은 내가 쓰고 있는 이 가면이 정말 나의 무엇인가를 확실히 가려주고―혹은 확실히 드러내주고―있는가 하는 것일게다. 내가 쓴 가면은 나를 나답게 하는가, 나를 나답지 않게 하는가. 굳이 정답을 찾을 필요가 무에 있을까. 나다운 나도, 나답지 않은 나도 결국은 나의 한 부분일 뿐. 매력적인 가면은 결국 나 자신을 통해 만들어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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