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라는 근위병 교대식이라지만 그래도 안보고 아쉽다 말하는 것보단 보고나서 실망이었어 라고 말하는 게 낫겠지 싶어 옮긴 발걸음. 아침, 우리가 버킹엄 궁전을 향해 걸어갔던 길은 한적해서 더 기분이 좋았다. 영국식 집들과 문패들, 현관문들을 보며 나름 즐겁기도 했고.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잠시. 버킹엄에는 정말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에 질린다는 생각을 해 본 건 딱 두번이었는데 바로 버킹엄과 루브르. 어찌나들 부지런하신지 일찌감치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기다린다는게 정말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근위병 교대식은 궁전 입구에서만 무려 한 시간씩이나 한다! 대충 자리라도 잡으려면 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는 궁전 앞에 도착해야 하는데, 거기서 또 한 시간을 서 있으려니 이게 진짜 고역이지. 중간에 빠져나가고 싶어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어 쉽지도 않고. 정복을 입고 씩씩하게 걸어나가는 영국 근위병들의 모습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렇게 숨도 못 쉬어가면서 볼 만 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에 지쳐버린 우리는 궁전 안에 들어가는 건 그냥 포기하고, 웨스트민스터로 가기로 결정. 버킹엄 궁전 주위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을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호즈가스와 다우닝가 쪽도 들러보고. 식물들을 그저 자라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 같은 영국식 정원을 걸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흘러가는 물에서 노니는 오리들도 보기 좋고. 호즈 가스에 들러 말을 탄 근위병 옆에서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는데, 솔직히 말똥 냄새가 좀...




웨스터민스터 사원(Abbey)는 사실 영국 역사에 큰 관심이 없다면 들어가보지 않아도 괜찮을 듯. 뭐 이를테면 영국을 명예롭게 한 사람들의 묘라고 할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별로 인상깊은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원 안에 있는 작은 뜰에서 펼쳐진 음악 연주가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많이 걷지 않는 건 무리라서 본격적으로 돌아다닌지 이틀째밖에 되지 않은 우리의 발도 이미 만신창이. 내셔널 갤러리에 가기 위해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걷는게 힘에 부쳤다. 그저 보기만 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던 내 발.




보물창고 내셔널 갤러리. 이미 늦은 오후가 다 되어가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관람하기에는 좀 힘들었지만―발이 아파서 서있는 것 조차 고문이라고 느껴질 지경―그래도 걷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전시관 PLAN에는 Highlight 작품들과 함께 전시실 번호가 함께 안내되어 있는데, Highlight 작품 보다는 그 옆에 있는 작품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이곳도 역시 제대로 둘러보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지. 기회가 된다면 꼭! 시간을 투자해서 여유있게 둘러보고 싶다.

6시 즈음이면 모든 관광지가 문을 닫는다. 해서, 할 일이라고는 없었던 우리는 쇼핑거리를 구경하기로. 다녀볼 코스는 우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Regent Street. 건물들 하나하나가 모여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 건물 자체가 곡선으로 건축되어 있었던 것이 꽤 신기했다. 그렇게 생긴 건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괜히 이곳 저곳 들어가보면서 구경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당장 쇼핑할 건 아니지만서도.

쇼핑거리라도 우리나라 처럼 늦게까지 영업을 하지는 않고 7시 즈음이면 슬슬 문 닫을 준비를 하는 곳들이 있다. 거리에는 퇴근 후 밖으로 나온 시민들도 많이 보이고. 여행객도 많지만, 영국 시민들이 더 많았던 거리. 우리나라의 쇼핑거리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라서 좀 고풍스러운 맛이 있다. 아마도 건물이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상점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기 시작하니, 이제 들어가서 좀 쉴 시간. 이미 혹사당한 발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내일은 뮤지컬을 보기로 했으니 오늘 좀 일찍 쉬어줘야 내일 졸지않겠다 하는 계산도 좀 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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