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브뤼셀은 많은 여행객들에게 거쳐가는 도시다. 동양인 가운데에서는 여행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좀 정해져 있는 편이라서, 일본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도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건 한국인. 호스텔에서 방을 같이 썼던 사람도(이름을 모른다. 안타깝게도;) 대번에 한국사람인 걸 알아보더라. 이유는 일본인은 브뤼셀에 잘 안 오기 때문.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도 브뤼셀은 오래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서 주로 반나절에서 한나절 정도 머무르다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 우리 일정도 정오쯤 도착해 1박. 다음날 아침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기로 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오후에서 저녁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브뤼셀까지 온 김에 왕립미술관과 왕궁까지 가보기로 했다. 역시, 사람은 별로 없더라.
왕립미술관까지 가는 길을 찾는게 좀 고역이었다. 브뤼셀 지도를 갖고 있긴 했지만 워낙 골목이 좁고 복잡해서 길을 걸으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결과적으론 맞는 방향으로 찾아가긴 했지만, 왕립미술관을 코앞에 두고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미술관 앞에 있는 광장에서 동서남북 방향을 잘못 찾아버려서. 게다가 지도에 건물이 잘못 표시되어 있기도 했고.
어쨌든 찾아간 미술관. 바로 앞이 보도블록이고 도로라서 큰 건물을 한 화면 안에 담기는 힘들었다. 이미 이곳까지 찾는데도 지친 터라 건너가서까지 사진찍을 기운도 없고. 그래도 미술관 입장료는 우리를 감동시켰다. 단돈 €3.5! 아마 미술관 입장료 중에 가장 저렴하지 않았을까.
미술관 내부는 굉장히 조용하다. 규모가 큰 데 비해 관람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마 여기까지 들르는 관광객이 별로 없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조용히 관람하기에는 굉장히 좋았다. 미술관 내부는 고전미술관과 현대미술관으로 나누어 전시를 하고 있는데, 고전미술관 쪽이 좀 더 볼거리가 많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이카로스의 추락> 이나 <마라의 죽음> 같은 작품도 있고.
왕립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는 로얄팰리스 광장에는 트램과 관광버스(여기서도 빨간 2층버스가!)가 쉴새없이 돌아다닌다. 트램이 이곳저곳을 잘 연결하는 건 좋지만, 역시 전선이 위쪽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은 미관상 별로 좋진 않은 듯.
여기까지 온 김에 왕궁도 한 번 둘러보고 가자는 생각에 왕궁으로 향했는데, 의외로 무료 개방 중. 작지만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는 정원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갈까 했는데, 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갔더니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해 두었다. 1년 내내 개방은 아니고 관광객이 많은 계절에만 개방해두는 듯. 가방을 맡기고 올라가면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왕궁 건물자체도 다른 나라보단 좀 작은 편이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화려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아기자기 볼거리가 제법 된다. 그냥 왠지 벨기에스럽다는 느낌이 든달까. 왕궁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 나올 때 방명록에도 시덥잖은 말을 한 글자 남기고..
왕궁 쪽에서 다시 나올 때는 브뤼셀 공원은 통해 걸어가기로 했다. 네모 반듯하게 가꿔놓은 잔디, 일렬로 줄지어 선 나무들이 왠지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프랑스의 뤽상부르 정원을 처음 봤을 때 미친듯이 웃었던 것보단 덜했지만. 예쁘게 가꿔놓은 건 좋은데, 흙바닥을 걸을 땐 흙이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 때문에 잔디를 깔려면 다 깔든가 이게 뭐야! 라는 생각도 잠깐. 그동안 봤던 영국의 공원들과 너무 다른 분위기라 좀 생소하기도 했다. 영국 공원은 오리들이 헤엄치고, 나무들이 마구 자라있다는 생각이 드는, 말 그대로 자연을 그대로 둔 듯한―물론 그대로 둔 건 아니지. 인위적인건 인위적인 것.―느낌의 공원과 이렇게 사람 손으로 가꾸었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 공원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달까.
저렇게 네모 반듯한 잔디 위에서 사람들은 앉아 쉬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땀을 뻘뻘 흘려대며 운동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왠지 흐뭇하기도. 운동이라면 질색을 하는 난 평생가도 저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이지는 못할테지만.
브뤼셀에 오면 한번쯤 들르는 성 미셸 대성당. 규모가 제법 크다. 새하얀 성당 앞에는 꽤 경사진 계단이 있고, 벤치들이 놓여 있어 성당의 외관 자체를 관람하기도 좋다. 일견 파리의 노트르담과 닮은 외양은 아름답고 웅장하다. 사람이 앞에서면 개미만해 보일 정도로. 계단을 올라가 성당 앞에서 보는 브뤼셀의 모습도 꽤 괜찮고.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나 조각품들도 눈에 띈다. 실제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유심히 본 건 이곳이 처음이었는데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밖에서 볼 땐 아무것도 아닌 듯한 검은 창들이 빛을 통과시키면 색색이 예쁜 빛을 내며 어떤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비스러울 정도였다.
저녁식사는 푸줏간거리에서. 사실 여기에서 먹으려고 생각했었던건 아닌데, 호객행위에 넘어가버렸다. 이 거리 아저씨들의 호객행위는 정말 최고! 안잡히고 넘어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국사람인건 어찌 귀신같이 알아서 다들 한국어로 인사를 하며 메뉴 설명을 막 해대는데, 웃는 얼굴이라 그냥 지나가기가 미안할 지경. 결국 한 아저씨에게 붙잡혀 한 레스토랑에 앉았다. 그치만 너무, 너무! 늦게 나오는 음식탓에 애꿎게 속만 더 썩였더랬지. 음식 자체가 나쁘진 않았는데, 어느정도 식사가 끝난 것 같으면 다음 음식을 바로바로 내줘야지!! 에피타이저+메인메뉴+디저트 요거 먹는데 두시간 넘게 앉아있었던 것 같다. 딱히 앉아서 할 일도 없었는데 말이지. 진짜 디저트 나오기까지 기다릴 때엔 그냥 나갈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다고.
그리고 다시, 그랑플라스. 해질 무렵이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해가 너무 늦게 졌다. 9시 넘게까지 왕의 집 난간에 기대앉아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기를 기다렸는데, 이놈의 해는 여행 내내 너무 늦게 져서 제대로 야경을 보기가 어려웠다. 여자 둘이 늦은 밤에 다니기엔 좀 무섭기도 하고 해서 조명이 좀 일찍 켜지면 좋겠다- 했는데, 결국 우리는 조명이 켜진 것을 보지 못하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다음날에도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는데, 무리는 하지 말자 싶어서.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창문을 통해 그랑플라스 쪽을 보니 시청사 탑에 불이 켜져 있어서 이게 뭐야! 하며 심통도 좀 나긴 했지만.
브뤼셀 일정은 그리 길게 잡은 게 아니라 오랫동안 천천히 살펴볼 수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사실 유명한 관광지만 다니려고 마음먹으면 그다지 볼 게 없는 도시이기도 하고, 하나하나 공들여 천천히 살피고, 벨기에의, 브뤼셀의 숨결을 느끼려면 하루만 가지고는 턱도 없는 도시일테지. 작은 도시이지만 아름다운 건물들, 광장, 처음 보았던 트램, 좀 불편했지만 말 그대로 배낭여행을 온 것 같아서 재밌기도 했던 호스텔에서의 하룻밤. 모두 오래도록 기억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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